텔겔 그룹에 속하면서 쿠바의 실험적 문학의 세계를 펼쳐가는 시인, 소설가이면서 극작가이
기도 한 세베로 사르두이(Severo Sarduy)는 “이제 바로크라는 말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모든 것은 철저히 바로크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한다. 스페인
언어권인 중남미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 전반에서 감지되고 있는 ‘바로크 미학의 부활’이나 ‘네오
바로크’의 ‘새로운 공기’는 18세기 바로크 양식 이전의 마니에리스모나 19세기 인상파 혹은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등 20세기 아방가르드와도 연계성을 지니면서 그 의미는 현대예술에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에 바로크의 미학 부활, 혹은 복권이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점점 더 심각해지는 기후의 이상변화나 팬데믹 현상은 인류에게 죽음과 멸망의 시간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어두운 사실을 일깨워준다. 선지자가 지팡이를 두드려 바다에
길을 내고 민족을 구하는 드라마틱한 구원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멸망하는 지구를
구해내는 영웅을 그린 희망적인 스토리의 영화들도 요즘 한풀 꺾이는 분위기이다. 이 멸망과
쇠퇴의 징후들은 가장 먼저 ‘구원 없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나 회화 등 예술세계에서도 나타난다. 이 멜랑콜리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원의 메시지가 사라진 메마른 영토에서 한 줌의 희망은 찰나로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현현하기
위해 잠시 등장하는 알레고리로 보여진다. 혹은 신의 구원의 막을 걷어낸 뒤에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운명을 동시에 갖게 되는 인간의 본성과 대면하게 되는 슬픔의 조각 역할을 한다.
피조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슬픔과 그 유한성을 관조하면서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멜랑콜리한 예술가들이 그러한 시대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징후들이 가장 먼저 부각되고 있는 매체는 극도로 섬세하면서도 아름다운 세계를
선으로 구현해내고 있는 드로잉 작품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