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Arrow of Time
무향시간 無向時間
강주리
전시 제목 ‘무향시간(無向時間, No Arrow of Time)’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어 한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믿는 ‘Arrow of Time(시간의 화살)’이라는 물리학적 개념과 반대로,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의식에 의한 현상이고 시간을 공간과 비슷한 차원으로 간주하며 모든 사건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봄을 뜻한다. 시간을 서로 다른 사건들 사이의 순서 관계로 설명하고, 시간의 흐름이 관측자의 속도와 중력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번 개인전은 회화 속 화면을 점유해 가는 과정과 작업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에 집중한다. 지금까지 시도했던 다양한 주제와 소재,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작업하는 행위에 주목하며 내러티브를 축소하기 보다는 거꾸로 더 늘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무향시간(無向時間. No Arrow of Time)’은 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순간으로 존재하며 무한히 긴 시간을 태우는 노동과 찰나의 선택이 오가는 나의 작업을 은유한다.
나의 주 매체는 종이와 잉크다. 그 중 회화 작업은 종이에 펜으로 그리는 것인데, 페인팅을 위한 밑그림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행위’에 더 집중한 의미의 드로잉(Drawing)이다. 밑그림 없이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일부 큰 계획만으로 시작되는 나의 작업은 습작과 다듬기로 완성되는 페인팅과 다르게 머릿속으로 정제한 것을 쏟아내고 나오는 대로 받아내겠다는 의지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사전 조사와 계획이 동반되지만 큰 틀을 제외한 디테일은 예측하기 힘들다. 그 전의 행위에 바로 반응하며 내러티브가 구축되어진다. 순간의 결정으로 화면의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즉각적이라고 해서 속도감 있는 작업은 아니다. 여러 단선을 교차하고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는 크로스해칭(Cross-hatching)으로 구조를 만들고 화면을 확장한다.
예술성이 작가의 주제 의식이나 창의성, 작업의 미감, 미적 감흥을 일으키는 것 등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바탕에는 작가의 끊임없는 노동과 피로가 있다. 지극히 사적인 노동이 주는 공감이 가장 일차원적인 소통이지 않을까. 모두가 스포츠 경기를 보며, 선수들의 노동을 응원하고 그 결과에 감격하는 것처럼.
작업의 마술적 경이로움이나 심미적 쾌락을 주는 것 이상의 나만의 세계를 구상하려는 자세에 집중한다. 나의 작업 과정은 일련의 규칙과 순서가 존재하고 이는 의례와 유사하기도 하다. 작업실에서 홀로 몰두하고 지속적으로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탈속적 행위에 나만의 신앙을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면을 향한 작업은 나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이런 ‘노동’은 ‘수고스러운 유희’다. 유희란,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그것 자체로서 흥미를 느끼는 활동으로,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다.
많은 이들이 약점으로 바라보는 종이의 연약함과 가벼움을 나는 좋아한다. 연약함은 유연함이고, 가벼움은 자유로움이다. 다양한 크기, 형태를 언제든지 혼자 만들 수 있고 원할 때 작업 할 수 있다. 동시에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가장 질기고 오래가는 매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현자의 돌’이란 ‘철학가의 돌’ 또는 ‘마법사의 돌’이라고도 불리며, 전설 속 존재하는 물질로 위대한 일을 완수하게 해주는 연금술의 최고의 경지이며 목표이다. 이 능력을 터득하면 평범한 인간을 초월해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 ‘현자의 돌’은 실제 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상징이다. 나의 종이에 대한 관심은 작년부터 전주 한지장, 색지장, 지승장 등 여러 장인들과 대화하고 협업 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평생 노동으로 보낸 장인들은 이런 연금술사를 떠올리게 했다. 장인들의 이 반복적 행위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다고 여겨지기도, 라캉이 이야기한 주이상스 (고통스러운 쾌락), 불가능한 만족을 향한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되기도, 또는 공자가 이야기한 ‘낙지자’의 쾌락 원칙과 유용성의 논리를 넘어 위험한 강을 건너며 황홀함을 향유하는 태도로도 보여졌다.
그들의 시간은 나와 다르게 한 방향을 향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을 추구하며 전통의 길을 고수하는 장인들의 작업 과정과 달리, 난 과정 속 오류와 의외성이 흥미로웠다. 반복 행위의 안정감과 피로의 쾌감 사이, 오류는 해방감을 주었다. 장인들의 만류에도 나의 설치 작업은 완벽하지 않은 종이결과 염색, 계획에 없는 행위로 완성되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유용성과 무용성의 경계에 대한 고민,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환원되는 자본주의 세계 안에서 작업의 위치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나만의 의식을 계속해서 치르고 있다.